공연스토리

[동작署와 연극 만든 배우 최일화] 

홍보대사 맡으며 제안하고 출연 
"주위의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 조폭 말고 경찰 役도 맡고싶어"
 

최일화(57)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서울 동작경찰서 학교 폭력 예방 홍보 대사를 맡으면서 중학교 때 기억을 떠올렸다. 하굣길에 한 선배가 골목으로 불렀다. "돈 내놔!" 주머니에 한 푼도 없던 그는 30분간 온몸을 두들겨맞았다.
 

그로부터 4년 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는 인천의 한 시장에서 그 선배와 다시 마주쳤다. 시장 귀퉁이에서 구두를 깁던 선배는 뒷걸음질치는 그에게 다가와 "미안해. 여태 마음이 편치 않았어"라고 말했다. "학교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평생 가슴에 멍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죠."

최일화는 올해 초 "학교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연극을 만들겠다"고 동작서에 제안했다. 지난 2월부터 총감독을 맡아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로 유명한 극작가 김광탁씨와 함께 희곡 '친구야! 미안해'를 만들었다. 한국연극배우협회 소속 배우 10명과 동작서 학교전담경찰관(SPO) 6명이 합류해 공연 연습에 들어갔다. 진행비 5000여만원은 최씨가 대출까지 받아 부담했다.
 
학교 폭력 예방 연극 ‘친구야! 미안해’를 만든 배우 최일화(오른쪽)와 피해자로 출연하는 배우 이슬기. 최일화는 “학교 폭력은 가·피해자 모두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 일”이라며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극이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친구야! 미안해’의 한 장면.
학교 폭력 예방 연극 ‘친구야! 미안해’를 만든 배우 최일화(오른쪽)와 피해자로 출연하는 배우 이슬기. 최일화는 “학교 폭력은 가·피해자 모두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 일”이라며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극이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친구야! 미안해’의 한 장면. /이진한 기자
두 달 준비를 거쳐 29일 오후 동작구 성남중학교 강당에서 '친구야! 미안해'가 상연됐다. 성남중 학생 460명이 관람한 40분 길이 연극에서 그는 학교전담경찰관으로 성장한 주인공 호식의 미래 모습을 연기했다. 학교 폭력으로 괴로워하는 친구를 도울 용기가 없는 호식에게 미래에서 찾아와 "학교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역할이다.

극 중에서 호식은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이) 네 잘못이 아니야! 주위에 도움을 청하라"고 외치며 끝없는 따돌림에 자살을 시도하던 수애를 구출했다. 연극에는 동작서 소속 학교전담경찰관들도 출연해 학교 폭력의 유형과 예방법을 소개했다.

최일화는 영화 '우아한 세계' '신세계' 등에서 냉정한 악역(惡役) 전문 조연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원래 (나는) 뼛속까지 연극배우"라고 했다. 연극 무대로 데뷔한 지 34년이 됐지만 20년 넘게 무명 배우였다. '삼류배우' '서안화차' 같은 연극에서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주며 인지도가 올라갔고, 지난해 연극배우협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최일화는 "학교 폭력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연극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감정이 어느 장르보다 극대화되는 연극을 통해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심정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가해자뿐만 아니라 알고도 모른 척했던 주변 사람들도 이 연극을 보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그는 대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아들에게 틈만 나면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풀어나가자"고 말한다. 학교 폭력 연극을 준비하면서 주위의 무관심이 더 큰 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연극이 시작되기 직전 경찰 제복을 입은 이 배우는 "그간 TV나 영화에서 폭력 조직 두목이나 회장님 역을 주로 맡았는데 (제복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몸을 던져 시민을 구하는 경찰 연기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30/2016033000269.html